애니는 아침부터 변 상태가 계속 안 좋다 못해 점액질? 변을 보는 걸 보고
이스트 케이프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핏펫에 이스트 케이프 환불 요청했다.
핏펫 상담사분은 변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냐고 하셨고.
난 사진을 그때 그때 찍어놓지 않은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배변통을 뒤적였다.
마침 어제 저녁에 배변통을 비운 덕에 오늘 변만 남아있었고
형태 알기가 힘들지 않을까 하던 찰나에 굳지 않은 변을 발견했다.
상담사님은 변 사진 확인 후(그때 그때 찍어둔 게 아니라서 거의 두부모래 사진이긴 했으나),
자기 상품 탓이 아님에도 환불 진행해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좀 고마워졌다.
주로 먹이고 있는 웰니스 키튼 파테는 펫프에서만 팔아서
당분간 펫프는 반강제적으로 구매하게 될 테지만...ㅠ
웰니스 키튼 다 먹이고 나면 핏펫에서 살까 싶어진다.
(핏펫... 제발 자체 배송 해줘...)
요며칠 애니 상태 때문에 우울해져서 카톡 상태명에 잠수라고 해뒀는데 아는 오빠가 신경쓰였나보다.
나를 깊은 수심에서 끄집어내고 싶었는지 두잇 제품이 드디어 직원 할인가로 나왔다며 골라보라고 했고.
사이트 가격보다 높은 직원 할인가를 보며 의아해하다가
'아...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연락했구나.' 싶어서 오빠한테 고마워서 힘내기로 했다.
음... 또 말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예전엔 사람과 사람 간에 에너지를 주고 받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또 의미있게 여길만큼 따듯한 에너지를 주고 받는 일도 없었다.
(따듯한 걸 싫어하는 건 아닌데. 긴 시간 너무 편하게 살아서 그런가. 따듯한 느낌이 불편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사람을 다시 한 번 믿어보게 만드는 사람들이 생긴다.
예전엔 그 상황이 조금은 위협적으로 느껴졌지만, 요즘은 따듯함을 전해주는 사람들에게 참 고맙다.
애니가 오기 전의 난 성격 괴팍하고, 냉랭하고, 싸가지 없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물론 그게 겉으로 크게, 처음부터 화르륵 드러나는 건 아니고.
상대방이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나 핀트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공감할 수는 없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궁금하기는 해도 그 감정에 몰입할 수 없었다.
스스로가 '사이코패스인가?'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말들은 크게 와닿지 않았고,
뭔가를 깨우쳤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지식 스탯+1이 늘어나는 느낌이었달까.
분명히 따듯한데 어딘가 묘하게 교과서적인 진부한 리액션,
섬유유연제 광고 속에 나오는 따듯하고 나이스한? 인간들이 늘어놓을 법한 검열 잘 된 리액션은 내 특징이었고.
그 형식적인 리액션은 상대방을 외롭게 한다거나, 열받게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힘들 때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감정 불쑥 내밀고 폭발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난 그 친구들이 정~말 신기하다.
벽에다 하소연하느니 사람 모양인 생명체에게 말하는 게 나아서 찾아오는 걸까,
본인이 감정을 핸들링하는 방식이나 가치관에 대해 판단하지 않으니까 편안해서 오는 걸까,
내가 타인의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게 보이니 오히려 편해서 이거저거 말하는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일단 쏟아부을 때가 필요한 걸까.
이유가 궁금하기는한데, 이유가 뭐든 변태끼 낭낭한 친구들인 건 확실해서...ㅎ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지는 않다.
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몰입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만큼
나도 내 감정, 감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더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상담성 노동?을 시키고 있는 거 같아서 뭔가 미안한 것도 있고...ㅠ
나한테 있었던 일들을 시간적 흐름에 맞춰 시시콜콜 얘기하는 게 귀찮고...
이 감정, 저 감정 표현해낼 적절한 단어들을 찾아내는 데에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심해서...ㅠ
차라리 그 시간에 혼자서 맛있는 거 요리해먹고 내가 좋아하는 우주 영상이나 보는 게 낫다고 해야하나...?
이런 상황이다보니
본인들 스트레스 받거나 힘들 때, 외로울 때, 슬플 때마다 나를 찾아와 시시콜콜 떠들고 가는 사람들은 많았어도
막상 내가 감정이 터져나올 때, 가드 내리고 편안히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잘 없던 것 같다.
(이건 주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가끔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외롭고 공허해져서
작정하고 '오늘은 감정 표현하자!' 마음 먹고 표현하려고 하면 숨이, 말문이 턱 막혀왔다.
(무슨 7살 어린애 같이 이거 싫어, 좋아 뭐 이딴 식으로 밖에 표현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
그런데 애니가 오고 난 후 감정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또 그 감정에 솔직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내 주변 사람들도 내 변화를 느낀다.
표현하는 게 많이 늘었다고,
옛날엔 감정선을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은 얼굴에 희노애락이 어느정도 보인다고.
(물론 그 감정선 보이는 게 애니 한정이라는 건 문제지만...ㅎㅎ)
무튼 애니 덕분에 간간이 표출되는
이 희노애락(또는 가치관) 덕분에 주변 사람들도
내가 어떤 걸 불편해하고, 어떤 걸 부당하다고 느끼고,
어떤 걸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걸 존중이라고 여기는지 가닥이 잡히나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필요로하는 게 뭔지 알고 먼저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 덕에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감쓰가 필요해서 옆에 두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알게 됐다...ㅎㅎㅠ)
뭔가를 받다보면 받는 데에만 길들여진 taker가 되어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유아기적 행태를 보이게 될까 두려워서 받는 걸 거부했는데...
애니가 오고 너무 힘들어서ㅠㅠㅋㅋㅋㅋ
그냥 다 받아보고나니 살아있다?는 게 뭔지를 알게 된 것 같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돌기 시작하니까 회복도 금방 된다.
예전엔 에너지 통장을 마이너스로 만들면서까지 에너지 내어주고
나 혼자서 그 마이너스난 에너지 메꾸느라 시간이 정~말 많이 들거나 더 마이너스로 가고는 했는데.
요즘은 애니한테 받는 에너지, 주변 사람들한테 받는 에너지 덕분에 마이너스 상태로 가지는 않는다.
덕분에 따듯한 말,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내어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예전에 한참 떠들던 긍정적 에너지 순환이 뭔지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애니가 만들어준 기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 어딘가 삐그덕 거리는 기계가 인간이 되길 기다리며 옆에 있어준 사람들 덕이 더 크지만...ㅋ
그럼에도 애니가 시작점이자 엄청난 기폭제가 되어준 건 분명해서...
애니한테 고맙고, 이런 애니를 만나게 해준 사장님께도 고맙다.
(물론 이제 껄끄러워서 연락 못하지만)
너무 멀리 와서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는데...
마무리는 발가락 사이사이 열심히 그루밍하는 애니로!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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