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지막 설사 이후, 기운 없어서 휘청거리는 애니를 보며
죽을 아이를 내 이기심으로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죽을 아이를 고통스럽게 연명하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애니 '덕분에' 살고있는 것 같아서, 애니가 살아 숨쉬고 있어서 좋은데
애니는 나 '때문에' 살아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내가 고통 속에 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힘들었다.
모든 게 다 내 잘못 같아서 고통스럽던 찰나에
애니가 맛있어하는 거나 많이 주자 하고 츄르 2개를 줬었다.
애니는 14g짜리 츄르 2개 먹고 살아났는지 밤에 여기저기를 누비다 뻗었다.
잠깐이나마 많이 활동하고 뻗은 애니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독하게 먹기로 했다.
애니가 작고 약한 존재인 건 맞지만, 나약한 존재는 아니니까...
270g으로 떨어져서 죽을 것 같았지만, 잘 버텨줬으니까...!
그 작은 몸으로 하루에 설사 6번씩 하면서도 살아남았으니까!
애니는 내가 보는 것보다 강한 아이니까...
애니를 키우는 나도 마음 강하게 먹기로 했다.
잠들기 전 식기 2구에 치킨&비프 10g, 리브클리어 10g만 놨다.
원래는 건사료 5g, 습식 1/4캔을 세팅해놨었는데
오늘은 오로지 건사료만 세팅한 거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니는 내 품에서 자다가 일어나
평소 루틴대로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던 나는 평소처럼 애니를 밥 그릇 앞에 앉히고 다시 누웠다.
건사료만 보이자 당황한 애니는 한참을 킁킁 거렸다.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자는 척하는 내 손가락을 깨물며 깨웠다...ㅋㅋㅋㅋㅋ
난 또 아무 일 없는 척 식기 앞에 앉혀주고 다시 누웠고,
애니는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하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ㅋㅋㅋㅋ
마음 약해지지 않기로 했으니까...
이거 먹으라는 뜻에서 지위픽 담긴 그릇을 침대에 가져다놨는데,
일단 애니는 참고 먹어줬다.
하루 만에 달라진 식단을 보며 화가 난 애니는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내내 안 긁던 침대 매트리스를 긁고, 책상 의자를 긁고, 붙박이장을 긁고,
인형을 물어뜯고, 내 고무 슬리퍼를 물어서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역시 애니는 순한 게 아니라 내가 잘해줘서 순한 거였다^^!)
새벽에 저러면 안되는데 싶었지만, 독하게 마음 먹기로 했으니까...ㅎ
화낼 에너지가 있으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냅뒀다.
오후 6시까지도 적절한 관심과 습식이 오지 않자
애니는 자기가 무시 당하고 있다고 느꼈는지 내 어깨에 올라와 목을 물고 여기저기 할퀴기 시작했다.
예상하던 바라 아파도 꾹 참고 크게 반응 안 했다.
나중에는 볼펜도 깨물고, 급여일지도 깨물다가 결국 노트북도 깨무는데...ㅠㅠㅠㅠ
속으로 맥북 액정 수리비 얼마지?하고 조마조마 하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랬더니 아예 귀 접고 달려들어서 내 귓볼을 무는데...ㅎ
귀 뚫리겠다 싶은 건 둘째치고ㅠㅠ
가만히 냅두면 지 뜻대로 안 풀릴 때마다 이렇게 패악질 부리겠구나 싶어서 화냈다.
애니 너 내려가!!!!!!!!!!!! 라고 소리질렀는데 애니는 놀랐는지 알아서 순순히 내려갔다.
그렇게 순순히 내려간 애니는 뒤늦게 자기가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다시 달려들었는데(심지어 이때는 귀 접지도 않고 달려들음)
팔목으로 막으며 버릇없다고, 자꾸 까불지말라고 했다.
말 못하는 동물도 좋은 뜻이 아닌 건 아나보다.
모난 말 듣는데, 계속 블로킹 당하니까 분한지 여기저기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불 위로 올라가서 꾹꾹이 하는데.
분하고, 서운하고, 속상하고, 불안해서 하는 꾹꾹이라 보는 내내 짠한...ㅠㅠ
혹시나 의식하면 더 길어질까 컴퓨터에 집중하는 척, 관심 없는 척 했는데
애니는 한참을 꾹꾹이하다 잠들었다.
잠든 애니 뒷모습이 왠지 추워보이는데ㅠㅠ
애니 애착 잠옷은 빨래 돌려놓은 상태라ㅠㅠ
일단은 눈에 보이는 얇은 옷 하나를 살짝 덮어줬더니 애니가 눈 떴다.
신경 안 쓴 척 다급하게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애니는 완전히 깼는지 움직이기 시작.
최대한 모르는 척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애니가 쩝쩝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이상한 거 먹고 있을까봐ㅠㅠ
슬쩍 돌아봤더니 애니가 지위픽을 먹고 있었다.
다행이다 하고 다시 일하는데,
갑자기 진짜 큰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빨 부러지는 소리 아닌가 싶어서 돌아보니 애니가 리브클리어를 먹고 있었다!
평소에는 먹다가 뱉더니!
냄새만 맡고 도망가더니!
습식에 불어난 것도 씹기 힘들어서 남기더니!
쌩으로 주면 3알 겨우겨우 먹고 팽하더니!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리브 클리어를 먹어?
살짝 놀랐지만 '3알 먹고 말겠지'하고 칭찬할 타이밍 기다릴 겸 지켜보는데
시선 잘 느끼는 관종 애니가 시선 못 느끼는 척 계속 먹기만 했다...
(집사 흐뭇)
그렇게 애니는 그릇 절반을 비웠다.
그리고는 '뭘 그렇게 쳐다봐. 나 건사료 먹는 거 처음 봤어?' 하는 표정으로 높은 곳에 위치한 물 그릇으로 향하는데ㅋㅋㅋㅋ
밥 그릇 바로 옆에 있는 물은 안 마시고 높은 곳에 있는 물 마시러 가는 거 보니 천상 관종이구나 싶어서 웃기고ㅋㅋㅋㅋ
그렇게 물 다 마시고 칭찬 받고 싶어졌는지 애니 특유의 '나 잘했지?'하는 표정으로 책상에 올라와서
자기가 잘했다는 걸 스스로도 알 때만 보여주는 새침한 걸음걸이로 내 키보드 위를 걷는데...ㅋㅋㅋㅋ
내가 진짜 얘를 어떻게 안 사랑하나 싶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ㅋㅋㅋㅋ
난 아마 애니한테서 평생 못 헤어나오지 싶다...ㅋㅋㅋㅋ
이 요물한테서 빠져나오기는 글렀다...ㅋㅋㅋㅋ
아직 먹는 양이 적어서 안심하기 이르지만,
당분간은 애니의 성장 속도 관련해서 잠시나마 걱정을 덜 것 같다.
부디 중성화 시기 오기 전에 2kg 찍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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