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캔 4분의 1(~오후 3시까지) / ad캔 4분의 1(오후 3시부터 새벽4시)
- 끙아 3번(새벽, 아침, 오후 여전히 묽음) / 작은 거 2번(새벽 1번, 아침 1번)
- 새벽 5시 설사, 기침약 / 오후 4시
- 호흡수
- 인공눈물 아침 6시에 1번, 저녁 7시 44분에 1번
- 화장솜 그루밍 O
- 플라고 치약 1번 쓱!
눈 상태가 메롱이라 멀쩡한 눈 쪽만 찍은 애니
애니는 괜찮아지고 있는 것 같다.
먼저 거실에 나가고 싶다고 조를 정도로 활동성도 커졌고,
벽이랑 가구들 긁고, 전선에도 호기심 보이기 시작하고.
다른 고양이들이랑 다를 바 없어보여서 감사하다.
아침에 잠 덜 깨서 꾸질꾸질하지만 내 눈에는 제일 예쁜 아리
그런데 문제는 나다.
애니 상태가 조금 안정 돼서 긴장이 풀린 건지 몇 시간을 무너져내려있었다.
이제야 상황들이 정리가 되고, 이제야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엑스레이 결과 폐렴 아니고, 눈도 괜찮은 편이지만.
허피스는 확실하고 상부호흡기감염이 의심되는 상태이며
심장 한 쪽이 크고, 척추가 휘어있고, 복부에 음식물이 없고, 가스만 가득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최선을 다하고 싶은 내 욕심에 돌려보내는 거 없이 케어하겠다고 한 거고.
그 결과 다행히 애니는 건강해지고 있지만,
내가 만지기만 해도 약 먹이려는 건 줄 알고 기겁한다.
6일째 약 먹이고, 내일이 마지막 약.
내일 모레 다시 검사하러 가야하는데 또 약을 먹여야할 수도 있다는 게 서럽다.
어떤 사료 줘볼까, 어떤 영양제 주문할까, 어떤 장난감 사줄까 등등의 행복한 고민을 하고 싶은데
고양이 질병, 증상 검색하고 1살도 안 된 애니가 심근비대증이 아닐까 걱정해야하는 상황에 화가 난다.
걱정부터 앞서는 상황 때문에 화나는데, 또 이런 화를 가지고 있는 게 애니한테 미안해서...
여태까지는 분노를 꾹 모르는 척 외면한 것 같다.
가끔 아리는 올빼미인지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헷갈린다.
그런데 오후에 힘이 쎄진 애니와 약 먹이느라 씨름하고,
날 피하기 시작하는 애니를 재운 후.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갑자기 확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지난 며칠이 서러워서 눈물 나고,
어디에라도 불쑥 감정 들이밀고 무의미한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고,
또 마음 속 한 구석에서 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뒤늦게 내 자신과 샵 사장님한테 화가 난다.
다른 샵 사장님들은 결제 후 전화도 잘 안 받고, 전화 연결 되도 파양 막으려는 말만 한다던데...
지금 이 사장님은 전화 잘 받으시고, 파양 걱정보다 아이 건강 걱정을 먼저 하셨다.
이런 부분 보면 분명 좋은 오너가 맞다.
오너가 별로인 샵은 아이 상태로 클레임 걸면
데리고 올 때 이상 없었다,아이가 왜 이렇게 말랐냐며, 동물 학대로 신고하겠다고 역으로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다.
그런 최악의 오너들을 생각해보면 한국 최초 캐터리라던 이 분은 분명 좋은 오너다.
그런데 오늘은 이렇게 조그만 아이를 어미한테서 떼어내서 분양했다는 게,
기본적인 검사 했다더니 X레이 상으로 확연히 보이는 문제점을 하나도 고지 안 해줬다는 게 화나고...
아이가 다른 애들보다 확연히 작은데도, 묘연이라고 느끼고 데려온 내 자신한테 화가 난다.
마치 내가 고양이 카페에서 입을 욕하는 ‘나쁜 공급을 유발시키는, 나쁜 소비자’가 된 것만 같다.
그동안은 안 그랬는데, 오늘은 유독 내 스스로한테 화가 난다.
잠 덜 깬 애니
난 한 번 화가 나면 너무 오랫동안 깊이 앓게 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애니가 오고나서 좋아진 점들을 적어봤다.
1.청소와 정리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혼자서 공간을 쓰다보면 더러워져도 그냥 눈 딱 감고 넘길 때가 많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보여도 ‘내 공간에 내 머리카락 있는 거고, 어차피 안 좋아지는 건 나 하나인데 뭐 어쩌라고.’ 이런 느낌으로 살아왔는데.
애니가 온 후 머리카락이 보이는 그때 그때마다 휴지로 줍게 되었고,
영상을 찍으며 그동안 내 공간을 얼마나 엉망으로 써왔는지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요즘은 좀 더 열심히 치우게 되는 것 같다.
2.일을 좀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애니에게 쏟는 시간이 어마어마하다 느끼다보니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저절로 길어졌다.
집중이 안 돼도, 일이 잘 안돼도, 상상이 잘 안 돼도 어떻게든 앉아있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애니가 오기 전엔 ‘내 글은 왜 이렇게 구리고, 뻔하고, 임팩트가 없는 건가’ 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지고는 했는데.
요즘은 자괴감에 빠지려고 할 때쯤 인내하며, 힘내게 된다.
3.평범한 게 소중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제일 중요한 변화인 것 같다.
이전에는 미친듯이 새로운 소재와 미친듯이 새로운 캐릭터로,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생각했고.
캐릭터 하나하나 설명하느라 대사 한 마디 한 단어가 중요하고 소중했고(너무 집착해서 문장 구조에도 문제가 있는 상태),
흔하디 흔한 대사가 나올 때, 흔하디 흔한 레퍼토리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마감을 해도 마감이 아닌 것 같았다.
내 마음에 안 드니까.
그런데 애니를 키우며 ‘평범한 게 제일 소중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 것 같다.
그 덕인지 요즘은 내가 쓰는 글이 양산형 글로 보여도 괜찮고, 가끔은 흔하디 흔한 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염오도 보내줘야지.)
4.진짜로 웃는 순간이 많아졌다.
지난 10년 동안 내 웃음의 대부분은 자조적인 웃음이었던 것 같다.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자조적인 웃음이 유독 많았다는 거다.)
‘인생은 원래 거지 같은 코미디의 연속이지.’라는 생각으로 웃기지 않은 상황에도 웃을 때가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 애니를 보며 진짜로 웃는 날이 많아졌다.
이게 애니에게 제일 고맙다.
5.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성격도 조금 느긋해졌다.
어떻게 보면 여태까지 쓴 거랑 중복이긴 한데.
애니의 실수가 점점 사라지는 걸 보며 보며, 애니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예전엔 뇌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휘몰아칠 때마다, 그 생각들을 잠재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만 했는데
이제는 알아서 잠재울 수 있게 되었고, 건강하고 건전한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같다.
일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도, 다 맞는 길로 가고 있으려니 싶다.
(물론 애니의 건강문제에는 여전히 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