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자세로 자는 애니ㅠㅠ
애니는 새벽내내 기운 없이 잠만 잤다.
깨우면 스트레스 받을까, 자는 사이 저혈당 쇼크나 탈수증이 올까 아무것도 못하고 애니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어울리지 않게 식빵 굽는 자세로 자는 애니의 뒷모습을 보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불린 건사료를 괜히 줬나보다 싶고...
내가 데려와서 괜히 애만 고생하는 게 아닌가, 차라리 샵 사장님이 케어하도록 냅두는 게 낫지 않았나 싶었다.
데려가겠다, 보호하겠다, 잘 키워 놓겠다 한 게 잘못인 거 같다.
애니가 깨고 어떻게든 먹이려고 플라스틱 숟가락을 대동했다.
애니는 고개를 파묻고 먹는 걸 싫어하나보다.
그릇에 둔 건 어느정도 먹다가 멈추지만, 숟가락으로 먹이면 더 잘 먹고, 채우라는 눈치를 준다.
그렇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먹고 다시 잤다.
핥기만 하고 씹지는 않는 애니를 보며, 그냥 내가 다 잘못한 거 같아서 미안했다.
쪼매난 애니ㅠㅠ
오후 4시까지 자고 깨고 중간에 한 번 더 먹였다.
애니는 기운이 없는지 놀아달라고 보채지 않고 그냥 옆에 누워있었다.
애니가 나랑 있는 게 불편해서 깬 건가, 애니와 내 공간을 조금 분리해야하나 싶던 찰나
애니가 내 배 위로 올라와서 자기 시작했다.
아... 아직은 아니구나, 이 아이는 아직 내가 필요하구나 싶었다.
애니는 소리에 민감하다.
고양이들을 쉬게 만들어준다는 하프 음악을 틀자 나를 노려봤다.
ㅋㅋㅋㅋ... 살다살다 고양이 눈썹 근육이 일그러지는 걸 처음 본 거 같다.
소리를 끄자 만족한 듯 다시 잤다.
이미 우리 둘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애니한테 넘어간 거 같다.
아직 얼굴 밟고 다니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생각해보면 난 주도권 갖는 관계가 없나보다...ㅎ
아침에 본 변도 설사였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초록색, 카키색 변이 아니라서 그나마 감사하다.
초록색 설사를 봤으면...
드디어 왼쪽 눈 다 뜬 애니
애니는 게으르거나 관종인 거 같다.
분명히 혼자서도 침대에서 잘 뛰어내리면서 내가 보고 있으면 안 뛰어내리고 나만 본다.
마치 ‘날 옮겨라, 집사야’ 하는 것 같다.
뭐 어쩌겠나.
우리 공주님 화장실로 모셔다드려야지.
그렇게 애니는 만족한 듯 일을 보고는 뒷처리 없이 나왔다.
애니는 여전히 화장실 매너가 꽝이다.
어려서 그런 건지, 힘이 없어서 그런 건지 뒷발을 잘 못 쓴다.
일 보고 덮을 때 뒷발을 사용해야하는데 앞발로 긁다가 간다.
아마도 이 부분은 어미묘한테 제대로 못 배우고 온 거 같다.
애니의 건강 상태도 모르겠고, 아리에게 가르치는 방법도 모르겠어서 한 마리를 더 들여야하나 했는데...
두 마리 키울 돈이 없지ㅎ
그냥 내가 모래 다 덮어드려야겠다^^
애니가 활동하기 편하도록 가구들을 다 옮겼다.
전선 진짜...ㅋㅋㅋㅋㅋㅠ
언제쯤 와이어리스로 살 수 있을까...
애니는 가구들을 옮기는 동안 무서웠는지 눈이 땡그라졌다.
애니야, 너가 만만히 보는 집사가 가구들 통째로 옮기는 대단한 닝겐이다.
무서웠는지 숨숨집에 혼자 들어가서 숨었는데
다 옮기고 보니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기로 했다.
내일은 제대로 된 변을 봤으면 좋겠다.
초유를 조금 섞어주면 설사가 잡힐까 싶은데..
또 나 때문에 아플까봐..
분명 초유만 먹였을 땐 변도 조금씩 잡혔고.
초유 먹인 이후로 토할 듯 기침하는 것도 없어졌는데.
괜히 습식사료에 초유를 섞었다가 잘못될까...
그냥 다 조심스럽다.
난 아이를 안 낳는 게 맞는 거 같다.
아이를 낳으면 행동 똑바로 못하는 무지하고 멍청한 엄마가 될 거 같다.
그냥 아리를 내 새끼라고 생각하고 키우는 게 맞는 것 같다.
오후 6시 반쯤 애니를 침대 위로 올려줬다.
겨우겨우 살을 찌웠나 했는데 다시 빠졌다.
털만 없었으면 갈비뼈 마디마디가 다 보였을 거 같다.
그게 너무 속상하다.
도대체 애니의 어미묘는 애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 조그맣게 키운 건가 싶다.
사랑은 참 이상하다.
사랑해서 아플 때가 많은데 그 감정을 끊어내기가 참 힘들다.
그리고 사랑은 참 불공평하다.
참 이상한 게 같은 자식이래도 아픈 손가락은 따로 있다.
본능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자식과 이성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자식이 따로 있는 거 보면,
다들 따뜻하게, 아름답게 묘사하는 사랑이 누군가에겐 오히려 참 잔인한 감정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애니는 늘 반수면 상태인 듯 몸을 움직이거나, 뒤척이거나, 핥거나, 낑낑 거리다 공포에 사로잡힌 듯
커다란 동공으로 일어날 때가 많은데 오늘은 조금 잘 자는 거 같아 다행이다.
가구 위치를 바꾸길 잘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