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22.10.02 ~ing🫶🏻/22년 10월

2022/10/03 - 애니 입주한 날.

ANNiE와 JENNiNE 2022. 11. 2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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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에서야 내가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달았다.
집에 화장실도, 고양이용 식기도, 빗도, 모래도, 먹이도 없는 마당에 다짜고짜 데려다 달라고 했다니...
고양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집의 청결도를 보며 정말 하...
쪼매난 게 큰 영역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테니(사실 집 전체를 청소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동생방 지지...) 싶어서 내 방부터 얼른 청소했다.
비 오는데 쓰레기 봉투 2개 반(거의 3개) 채워서 아주 시원하게 버렸다.
(난 내가 스몰라이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꽤 맥시멀라이프를 살고 있었다.)
방을 치우는 동안 친구들과 주고 받은 오래된 편지들도 다시 읽고, 그때는 보이지 않던 친구들의 진심이 보여서 연락을 다시 했다.
다행히 내 친구들은 너그러웠고, 마감이 끝나는 11월에 밥 먹기로 얘기했다.
 
방을 비우고(비웠다기보단 버린 거지만), 내가 사야 할 목록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모래, 사료는 애니랑 같이 온다고 했고.
화장실, 고양이용 식기를 찾아 분양샵에 링크를 보내자 화장실 높이는 합격, 밥그릇은 불합격이었다.
화장실 높이는 아이의 배변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지만, 밥그릇 높이는 아이가 소화 시키는 데에  꽤나 큰 영향을 준다나.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아서 배달 올 때 같이 온 간장종지 그릇 2개를 애니의 식기로 정했다.
양치는 고양이 카페의 많은 분들이 이갈이 끝나고 하루 1번 하라고 했는데
데본렉스계의 프로 양치왕 한 분이 습관화 하는 게 좋대서 유치 때부터 일주일에 1번씩 하기로 결정.
 
스크레쳐는 배송 올 때까지 그간 모아온 내 운동화 박스로 대체.
카페트, 매트는 극세사 이불로 대체.
귀 청소는 집에 있는 화장솜으로 해주고 목욕은 4차 이후 하는 거로 계획.
빗은 장갑 형식으로 정했다.
이동장은 애니 체격에 맞는 게 없어서 골절 생길까봐 천 가방으로 결정.
캣타워도 사줘야하나 했지만 사장님이 아직은 사지 말라고 말리셔서... 노노.
장난감은 낚시대 하나로 정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10월 5일, 지금 생각해보면 아리가 또래에 비해 조그맣고 활동성이 없어서... 아껴진 돈은 많았던 거 같다.)
 
그렇게 애니가 도착하고 비 오는 날 아리를 맞이했다.
박스가 오들오들 떨리는데 마음이 다급해졌다.
양 손엔 우산, 애니가 들어있는 박스가 들려있고.
자꾸 전화는 오고.
아주 환장할 맛이었다.
그래도 입주하는 날이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이니까, 비 올 때 입주했으니까 잘 살겠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애니가 집에 오고 아리는 기침을 했다.
조그만 몸이 날아갈듯 기침을 해대는데 진짜 마음 찢어질 거 같...ㅠ^ㅠ
알아서 적응하고 탐험하라고 냅뒀는데 이 쪼매난 게 게을러터져서(나중에 보니 기력이 없어서였지만)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는데 속이 터지기 시작했다.
새끼 고양이들이 오면 적절한 무관심이 필수라 일하는 척 곁눈질로 봤는데 쪼매난 게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자기 영역을 살피는 듯 했다.
보통 고양이들은 처음 오면 일단 구석에 가서 몸을 숨기고 숨숨집을 찾던데.
얘는 그냥 돌아다니고 날 보고 있는데 ‘나 좀 모셔봐라. 집사야.’ 하는 거 같아서 어딘가 내 공간을 뺏긴 거 같은 불쾌함+주도권 싸움에서 질 것 같은 불안감+편안해하는 거 같아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이 뒤섞였다.
 
화장실이 배송 안와서 차 박스(향이 남아있어서 내가 아끼던 거ㅠㅠㅠㅠ)에 두부 모래 넣어주고 애를 거기다 올려뒀다.
마치 "여기가 니 화장실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야심차게 준비한 간장종지에 먹이와 물을 놓고는 “마 임마 이게 니 밥그릇"하듯 코에 가져다 대주고 다른 곳에 뒀다.
준비한 임시 침대 위에 올려놨더니 날 쳐다보는 눈이 “이게 다냐. 닝겐?” 하는 느낌이었다.
 
감기 때문에 눈이 퉁퉁 부은 애니ㅠㅠ
 
냥이와의 기싸움에서까지 밀리고 싶지 않아서 모르는 척 했는데 작업하는 내내 뒷통수가 따가워서 보니까 쪼마난 게 정말 나만 보고 있었다.
결국 내 신상 하얀 이불ㅠㅠ이 있는 침대에 올려뒀다.
그랬더니 갑자기 살살 졸기 시작하면서 1분도 안가 지 자리인냥 딱 눕는거다.
임시 침대에서는 앉아서 쏘아보기만 하던 기집애가...
 
아무튼 이 때 느꼈다.
얘랑은 정말 단단히 엮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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