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 - 사랑을 가르쳐주러 온 애니...?
- 웰니스 키튼 파테 1/2 + 브릿 캣 프리미엄 그레이비 치킨 키튼 파우치 1/2포 with 인트라젠&kmr 분유 0.25스푼 / 리브 클리어 10그람(여전히 리브 클리어는 안 드셔주시고, 브릿 키튼은 두 스푼 남김) + 위스카스 주니어 고등어 1/2포 (혼자서 설거지 해두신^^)+ 브릿 캣 프리미엄 그레이비 치킨 파우치 1/2(반 이상 남김)
- 끙아 2번 - 2단계 2번
- 쉬 3번(중간 크기 2개, 큰 크기 1개)
- 분당 호흡수 34번
- 인공눈물 X, 귀지X, 화장솜 그루밍 X, 물티슈 간이 샤워 X, 빗질X, 플라고 치약 X, 발톱 X.
애니를 볼 때마다 놀라운 게
말이 통하는 관계도 아닌데, 대화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닌데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거다.
(가끔 동물이랑 감정을 주고 받는 게 말이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사람이랑 감정을 주고 받는 건 가능하시냐고 반문하고 싶다.)
애니는 관심 추구형 고양이고.
내가 부드럽게 만져주고, 뽀뽀해주고, 관심을 주지 않으면
바로 밥부터 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옆에 있지 않으면 잘 안 먹는데.
그럴 때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면 배가 오동통해지게 먹는다.
관종도 이런 관종이 없는데.
가끔 애니와 함께 하는 밤, 애니에 대한 사랑이 우러나올 때가 있다.
'애니랑 헤어지면 나는 평생 이 밤을 그리워하겠구나.' 싶은 그런 밤.
평소에는 관종 고양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인위적인 사랑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데😂
오늘 같은 밤에는 정말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게 된다.
그러면, 애니는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하고.
곧 혼자서 밥 먹으러 간다.
밥 그릇을 들고 침대로 오지 않아도, 옆에 있지 않아도,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지 않아도
밥 그릇을 싹싹 비운다.
참 신기하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동물도
인위적으로 하는 사랑과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구별할 줄 안다.
정말 깊은 사랑을 받는 생명체는 자기가 받고 있는 게 뭔지 알고.
스스로를 챙기게 되는 것 같다.
애니를 만나기 전의 난 사랑은 주는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애니를 만나고 나니 사랑은 받는 사람이 더 잘 아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주는 사랑도 사랑이지만.
그런 사랑은 주는 쪽이 훨씬 더 잘 아는 거 같고.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사랑은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훨씬 더 잘 아는 것 같다.
뜬금없지만 난 어릴 때부터 결혼을 원했다.
10대 때 누가 꿈을 물어보면 현모양처라고 답했다.
그리고 결혼 제도, 결혼 생활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세상에는 불륜이 만연하다.
그리고 불륜으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개인과 개인이 서로에게 속박되는 결혼 제도가 명목상으로라도 수 천년 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래에 태어날 아이의 안전 85%,
불온전한 한 사람이 불온전한 한 사람을 만나 느낄 수 있는 심적 안정성 5%,
사고나 질병 같은 이유로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없을 때 부양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5%,
사회에 만연해질 수 있는 성별을 막기 위함 5%.
이 정도 인 것 같다.
적어도 30살의 내가 생각하는 결혼 제도는 그렇다.
아이 가질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혼 제도가 가져다주는 불편함의 85%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나한테만 할당되는 장점은 겨우 15%.
그 15%의 안정과 안전을 위해 평생 한 사람에게 묶이는 짓은 안 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고.
또 내가 결혼에 적합한 동물인지 모르겠어서 모든 게 불투명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모든 게 불분명하게 느껴지던 순간, 애니의 사진을 봤고.
뭔가에 홀린 듯 애니를 데려왔다.
홀려서 데려와놓고 이유를 갖다붙였다.
애니와 함께 하면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느껴지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관심을 쏟기 귀찮을 때에도, 관심이 정~말 안 갈 때에도 관심 가져야만 한다는 거.
경제적인 책임이든 감정적인 책임이든 내 선택에 관해서 책임을 다 해야한다는 거.
혼자 있으면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는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해야한다는 거.
대충 이 3가지 정도가 결혼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의 대표적인 구성요소라고 생각해왔는데.
애니랑 함께 하는 그런 능력치?가 늘어가고 있는 게 느껴졌고.
솔직히 이건 예상하던 바라 그닥 놀랍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사랑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하는 사랑의 결과물은 들이는 노력에 비해 미미하고 보잘 것 없지만,
저절로 우러나오는 사랑의 결과물은 들이는 노력도 없는데 썩 괜찮다는 거.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진실된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은 스스로를 챙길 자력이 생겨난다는 거.
솔직히 자기개발서나 에세이 여기저기에 써진 흔해빠진 말들인데.
직접 체감하고 있으니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많다.
흔해빠진 말들이 조금 달라보인다.
나이 서른 먹고 1키로그람도 안 되는, 3개월 된 조그만 애한테서 사랑이 어떤 건지 배우고 있다는 게 웃긴데.
이 아이가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 아이와 만난 게 감사하고.
이 아이가 내 옆에 있어주는 게 감사하다.
감정이 훅- 올라와서 글이 정리가 안 되는데...
오늘따라 유독 애니한테 배우는 것도, 받는 것도 많은 것 같다.
앞으로도 나랑 오래오래 쭉 행복하게 같이 살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