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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5 - 애니 분유, 젖병 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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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와 JENNiNE 2022. 11. 23.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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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애니는 스스로 먹었다.
온수매트가 꺼진 걸 뒤늦게 알고 혹시 죽은 거 아닌가 싶어서 내 체온으로 비벼주며 깨웠는데,
깨자마자 내 입술에 뽀뽀를 하길래 ‘얘가 내가 노력한 걸 아나보네.’ 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계속 내 입술을 핥는거다.
이 행동의 의미가 뭘까하다가 감이 왔다.
 
간장종지ㅋ 뚜껑을 열어주자 애니는 냄새만 맡고 돌아섰다.
비어있는 주사기를 가져다대자 쭉쭉 빨았다.
언제까지 내 손으로 먹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게 네 먹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주사기로 간장종지에 담긴 사료를 콕콕 찝었다.
그러자 애니가 먹기 시작했다.
모지라도 괜찮으니 살아있게만 해달라고 했는데 이게 웬걸, 애니는 모지란 애가 아니었다.
뭐가 뭔지만 액션으로 알려주면 알아서 해낼 수 있는 아이였다.
애니는 열심히 먹었고, 내 핸드폰에 영광스러운 영상을 남겨주셨다.
 
맛없어하면서도 먹는 애니

 

얼마 안 먹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살아보려는 의지를 봤으니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고 생각했다.

 

애니가 자꾸만 토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 사료가 입맛에 안 맞거나 몸에 안 받는 거 같아서 분유부터 다시 탄탄히 시작하기로 했다.
샵 사장님과 얘기한 결과 막내로 태어났고, 날 때부터 사이즈가 워낙에 작았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먼저 말합니다. 샵 사장님 욕하지 말아주세요. 케어할 애들 많은데도 정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형제들한테 어련히 치였을까 싶어서 수의사, 샵 사장님과 상의 후 분유랑 초유도 먹이기로 했다.
모든 묘종이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데본은 유독 영구치가 몇 개 안 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았다.
애니가 태어날 때부터 약한 아이였던만큼 혹시나, 정말 혹시나 영구치가 안 날 수도 있겠다고 싶어서ㅠㅠ
애니 치아가 손상될 거 같은 주사기는 쓰지 않기로 했다.
 
무튼 애니가 몇 시간 전(10월 4일 무려 1004!) 스스로 밥을 먹는 걸 보며 기뻤다.
얘가 드디어 살기로, 엄마한테 버림 받은 거 꾹 참고 스스로 살아보기로 결정했구나 싶어서 너무 기뻤다.
여전히 기력이 없는지 잠만 자고 있지만, 또 언젠가 내 책상에 올라오려고 하지 않을까 싶고.
나중에는 스스로 책상에 올라와 내 키보드를 밟고 다니며 나와 살벌한 눈싸움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자 눈에 고양이 알레르기가 올라와있었다.
좀 심하게...ㅠ 결막 부종으로...
애니가 온 후 세 시간마다 상태 체크하느라 잠을 못 잤는데, 잠을 못 자다보니 식욕이 떨어져서 밥도 안 먹었더랬다.
이런 저런 이유로 면역력이 떨어진 거지 결막 부종까지 왔는데 바로 약국으로 가서 먹는 알러지 약, 넣는 약도 받아왔다.
폭풍 검색 후 3주 꾸준히 먹으면 고양이 알러지가 줄어든다는 리브 클리어 사료도 사왔다.
앞으로 이 사료를 부수고 잘게 갈아서 분유랑 섞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애니는 다행히 젖병을 잘 빨 줄 아는 아이였다.
극세사 이불에 꾹꾹이를 해대며 쭙쭙 하길래 바로 분유 타서 먹였더니 조금, 아주 조금(그치만 여태까지보다 많이) 먹었다.
아마도 애니한테 밥은 따뜻한 게 관건인 거 같다.
따뜻하게 먹이니까 좀 더 받아먹는다.
여전히 많이는 아니다.
15cc? 어제보다 나은 수준이다.
어제는 다 합쳐서 6cc였으니까.(그나마도 주사기 하나는 반먹 반뱉이었다.)
혼자 먹은 건 정말 얼마 안 먹어서...
정말 까탈스럽다.
 
애니는 활력을 되찾았는지 내 어깨 위까지 자기 힘으로 올라왔다.
데본이 집사 어깨에 있는 걸 좋아해서 어깨냥으로 불린다던데,
애니는 어깨는커녕 허벅지에만 있길래 믹스냥이라고, 데본 특징이 약한 거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대로 애니가 떨어질까봐 웅크리고, 애니는 아리대로 어깨 위에서 중심 잡기를 힘들어했지만.
내가 내려줄 때까지 아리는 내 어깨에서 냄새를 맡고 숨을 그릉그릉 거리고(코 막혀서 그런가?) 있었다.
 
이제는 인정해야할 것 같다.
애니가 나한테 참 특별하다는 거.
남들 눈에는 못난 삼색이, 너무 쪼마난 데본 렉스, 데본 렉스를 가장한 믹스묘일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해리포터의 도비이자 요정이다.
 
아무튼 애니는 천천히 내 인생의 도비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애니와의 여행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애니가 못 버텨주면 이 일기는 한 달도 못 간다.
끝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애니가 최대한 버텨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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